초당
'초당'은 제 향에서 수나라에 이어지면서 발전해 온 유미주이를 계승하여 시의 형식과 시작 기교를 발전시킴으로써 당시가 크게 성행할 기초를 이룩하였던 시기이다. 그리고 시의 형식미와 아름다운 표현 및 성률의 해화의 추구는 마침내 새로운 시의 격률을 이룩하여 근체시를 완성시켰다.
상관의로 대표되는 궁정시인, 그리고 초당사걸 문장사우 등도 형식미와 음률을 중시하여 율시와 절구의 격률 완성에 공헌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심전기와 송지문에 이르러 새로운 근체시의 격률이 완성된다.
한편 시대 조류에 초연했던 왕적 왕범지 한산 등은 새로운 시풍의 흥성에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시의 형식과 성률을 중시하는 유미주의 풍조를 반대하고 한 위의 풍골을 내세웠던 진자앙은 '성당' 을 준비한 작가로서 주목할 만하다.
궁정시인
당은 건국 후 안정을 이루어 궁정에는 수많은 대신들이 모여 양 진의 궁체시를 계승하여 화려한 형식으로 황제의 공을 노래하고 덕을 칭송하는 시를 짓게 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가공송덕 이외에는 모두가 응제 수창의 작품이어서 극히 형식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궁정시인들의 시풍은 바로 '초당' 시의 주류를 이룬다.
초당사걸
상관의와 비슷한 시기에 제 향의 유미주의를 계승하면서도 궁정시인의 무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작활동을 함으로써 당시 발전에 공헌한 작가로 '초당사걸' 이 있다. '초당사걸' 이란 왕발 양형 노조린 낙빈왕의 네 명을 가르킨다.
이들 초당사걸의 작품은 육조의 기풍을 완전히 탈피하여 사회생활을 표현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강건하면서도 청신한 격조를 세웠으며, 점차 율시의 체제를 확정시키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문장사우
'초당' 후기에 양 진의 유미주의 시풍을 계승하면서도 궁정시인으로 율시의 완성에 적극적인 후원 역할을 하였던 사람들로 이른바 '문장사우' 가 있다. '문장사우' 란 최융 이교 소미도 두심언의 네 명으로, 모두 대신들로서 조정에서 측천무후를 비롯한 황제의 명을 받들어 글을 짓던 사람들이다. 모두 궁정시인으로 응제의 오언율시를 가장 많이 지었다.